2009년 05월 28일
드라마「타이카 개신」의 충실함
옛날에 본 이 단편드라마를 오카다 준이치때문에 갑지기 필받아서 다시 보고 있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일본서기를 찾아봤더니 이 드라마가 충실하게 일본서기에 기록된 대로 만들었더라구요.
기록에 없는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이루카와 친구였다든가 등등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작했지만, 카마타리가 타이카 개신의 주역으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두 곳 - '고교쿠 3년 정월-나카노오에노미코(皇子)와 카마타리의 첫 만남, 고교쿠 4년 6월 12일-소가노 이루카의 암살' 이 두 기록에는 꽤 충실했네요.
그중에서 소가노 이루카 암살의 일부분입니다. 왼쪽이 드라마 캡쳐와 대사, 오른쪽이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드라마를 봤을 때도 역시 이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그대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걸 보니까 기분이 굉장히 묘해지는거예요. 원문의 한문과 직역의 압박을 이겨내고 읽어내려가다보면 들마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축약해서 쉽게 표현하긴 했지만 대사도 기록에 없는 말 일체 끼워넣지 않고 묘사된 그대로 서로 주고 받고 있는데다, 어깨를 베이고 이어서 다리를 베인 이루카가 어좌 앞으로 기어가는 것도 기록 고대로, 이후 비가 쏟아지는 것도 극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한 연출이겠거니 했는데 '이날 비가 내렸다.是日雨下' 하고 딱 적혀있는걸 보니 그저 후덜덜할 뿐이었고요;;
드라마에서 카마타리가 이루카에게 활을 쏘고 죽어가는 이루카를 껴안고 통곡하는 부분은 허구지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카마타리는 후방에서 활을 들고 지켜보고 있었다.' 라는 글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묘사된 살해과정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루카가 천황에게 "오키미(천황을 부르는 당시의 존칭)시여..." 하고 애원하는데 아들 나카노오에의 설득을 들은 천황이 싸늘한 눈으로 이루카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휙 돌려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부분입니다. 이루카의 표정에는 절망이 어리고 다시 한번 처절하게 "오키미시여!" 하고 부릅니다. 나는 죄가 없다 밝혀달라 등등 원본의 구구절절한 애원을 다 생략해버리고 그저 오키미를 부를 뿐인데도, 굳이 대사로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원문 그 이상으로 충분히 전달되더라구요.
'천황은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天皇即起入於殿中' 원문의 이 부분을 딱 포착해서 이루카에게 더할나위없이 잔인한 천황의 배신을 표현한 것도 그렇구요. 타카시마 레이코의 싸늘한 표정이 대단했죠. 아마 드라마를 안봤다면 원문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겠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니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 간결한 기술이 여러가지로 굉장하게 다가오네요.
알고 있는 역사를 영상물로 재구성한 것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반대로 흥미롭게 본 영상물을 그대로 옮겨적은 듯한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매우 크네요.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기록에 충실한 드라마의 순기능일테지요^^
* 여러가지로 욕을 먹고 있는 일본서기에 대한 논란은 익히 들었고, 사료비판을 통해 잘 걸러내고 취할 것을 취한다면 편찬시기가 삼국사기를 앞서는 귀중한 고대사 자료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캐허접쓰레기창작소설라는 둥 우익 들마라는 둥 몇년 묵은 태클은 정중히 반사하겠습니다.
기록에 없는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이루카와 친구였다든가 등등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작했지만, 카마타리가 타이카 개신의 주역으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두 곳 - '고교쿠 3년 정월-나카노오에노미코(皇子)와 카마타리의 첫 만남, 고교쿠 4년 6월 12일-소가노 이루카의 암살' 이 두 기록에는 꽤 충실했네요.
그중에서 소가노 이루카 암살의 일부분입니다. 왼쪽이 드라마 캡쳐와 대사, 오른쪽이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드라마에서 카마타리가 이루카에게 활을 쏘고 죽어가는 이루카를 껴안고 통곡하는 부분은 허구지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카마타리는 후방에서 활을 들고 지켜보고 있었다.' 라는 글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묘사된 살해과정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루카가 천황에게 "오키미(천황을 부르는 당시의 존칭)시여..." 하고 애원하는데 아들 나카노오에의 설득을 들은 천황이 싸늘한 눈으로 이루카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휙 돌려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부분입니다. 이루카의 표정에는 절망이 어리고 다시 한번 처절하게 "오키미시여!" 하고 부릅니다. 나는 죄가 없다 밝혀달라 등등 원본의 구구절절한 애원을 다 생략해버리고 그저 오키미를 부를 뿐인데도, 굳이 대사로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원문 그 이상으로 충분히 전달되더라구요.
'천황은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天皇即起入於殿中' 원문의 이 부분을 딱 포착해서 이루카에게 더할나위없이 잔인한 천황의 배신을 표현한 것도 그렇구요. 타카시마 레이코의 싸늘한 표정이 대단했죠. 아마 드라마를 안봤다면 원문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겠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니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 간결한 기술이 여러가지로 굉장하게 다가오네요.
알고 있는 역사를 영상물로 재구성한 것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반대로 흥미롭게 본 영상물을 그대로 옮겨적은 듯한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매우 크네요.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기록에 충실한 드라마의 순기능일테지요^^
* 여러가지로 욕을 먹고 있는 일본서기에 대한 논란은 익히 들었고, 사료비판을 통해 잘 걸러내고 취할 것을 취한다면 편찬시기가 삼국사기를 앞서는 귀중한 고대사 자료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캐허접쓰레기창작소설라는 둥 우익 들마라는 둥 몇년 묵은 태클은 정중히 반사하겠습니다.
번역출처 - 전용신, '완역 일본서기', 일지사,1989.
너무 딱딱한 직역은 원문 참고해서 의역했고, 이루카를 암살한 子麻呂, 佐伯連子麻呂, 稚犬養連網田들은
그냥 '가담자'로 통일했습니다^^;; 저 이름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
너무 딱딱한 직역은 원문 참고해서 의역했고, 이루카를 암살한 子麻呂, 佐伯連子麻呂, 稚犬養連網田들은
그냥 '가담자'로 통일했습니다^^;; 저 이름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
# by | 2009/05/28 02:27 | ●드라마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어차피 다큐 아닌 드라마니까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는 건 제작진의 입맛대로라고 해도 아테님이 보여주신 부분처럼 기록을 충실하게 그려낸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힘을 받을 수 있고요.
요즘 사극은 사료를 단순한 모티브 정도로 삼고 팩션 아닌 픽션으로 드라마를 채울 때가 있어서 점점 사극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중이었거든요. 현재로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본 사극인 대왕세종도 작가의 메시지가 절절하고 의미있었어도 "사극"이라면 마땅히 첫 출발로 삼아야 할 사료와의 대화는 한참 모자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태종-세종으로 이어지는 그 시기에 근거로 삼고 써먹을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걸 잘 살려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고, 그러다보니 곱씹어봐야할 작가의 의도도 상대적으로 부실한 기반에 걸쳐져서 힘이 모자랐고요. 한양대화재 부분을 고려 부활 세력과 연결시켰던 예처럼 탁월한 시도도 물론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패러렐물을 보는 느낌까지도 들었으니까요^^;
여전히 사극은 만들어지고 있어도 대세 이후로는 사극을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아테님의 꼼꼼한 글을 읽고 나니 뭔가 하나 배우고 가는 기분입니다.
대왕세종은 윤선주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드라마 같아요. 역사가 이야기보다 뒤로 물러서서 작가가 표현하고픈 인물상과 메세지를 구현하기 위한 재료로만 존재하는 느낌이예요. 죽 늘어놓고 필요한 것만 골라 쓰는...^^; 윤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뭉클해하면서도 확 가지 못하고 멈칫거리게 되는 것도 작가의 픽션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였어요. 기반이 부실해서 힘을 잃었다는 네즈님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캐릭터들의 묘사에 윤작가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서 '역사적' 인물치곤 너무 섬세하거나, 개성이 강하거나 하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그게 사건전개를 위한 유닛캐릭터만 양산하는 퓨전사극 작가들과는 차별화되는 점이기도 하구요.)
제가 포스팅한 이 장면이 계속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도, 전체 이야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록을 충실하게 재현해낸 장면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옛날에 벌어졌던 어떤 일이 사료 밖으로 나와서 눈 앞에 성큼 다가선 듯한 이런 느낌이 사극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은데 우리나라 사극이 퓨전사극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드라마와 사료를 오가는 즐거움을 맛보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요. 덧붙여 지나치게 삐까뻔쩍해지는 의상과 뽕빨 과해지는 갑옷도 보기 괴롭습니다.ㅠㅠ (제발 좀 시대를 반영하란 말이다....)
네, 대왕세종은 선악의 구분이 없었어요. 세종과 대립하는 조말생이나 최만리도 자신이 뜻하는 바에 충실한 길을 걸어갈 뿐이었구요. 모든 인물들을 두루두루 따뜻하게 아우르며 한명씩 아이컨택(?) 해주는 그런 시선이 좋았어요. 천추태후는 경종 죽은 뒤론 좀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뒀어요. 혹시 보실거라면 경종 나오는 7회까지는 꼭 보세요! 고려판 꽃보다 남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