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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이건 좀...? (스포일러 대박)

바람의 화원을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중간중간 도판으로 실려있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은 내용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림이 이야기의 '부'라기보단 '주'에 가까워서 그림을 늘어놓고 거기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한 인상이 강해요.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그림에 담긴 뜻을 읽어내는 독화(讀畵) 또한 내용의 일부가 됩니다.

그런데 김홍도의 '주막' 그림을 독화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있더군요.

그림 속의 주막은 초가지붕으로 한눈으로 보기에도 윤복의 그림보다 누추함이 느껴졌다. 주모로 보이는 여인과 저자에서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듯한 여인이 보였다. 여인의 앞에는 그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었고,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보채는 아이를 달래려는 듯 주머니를 열고 있었다.

그 옆으로 사람 좋게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국사발을 기울여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국물을 퍼먹으려는 게걸스런 모습은 어김없는 출신을 말해주었다. 말하자면 장삿일로 돈을 벌어 양반흉내를 내려는 장사치였다.

남자는 화면 오른쪽에, 여인들은 화면의 중간에 있었지만 보는 사람의 시선은 남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였다. 색은 극도로 자제되어 여인들의 치마에만 연한 푸른색이 감돌았다. 얼기설기 엮은 싸리울타리에 해가 기울어가는 어스름 무렵으로 보였다.

하루종일 저자거리에서 물건을 팔던 부부가 저물 무렵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막에 들른 듯 했다. 술판 위에 술독과 술종지 몇 개가 엎어져 있는 초라한 주막이었다. 주모의 웃는 얼굴에서는 지친 손에게 술 한 사발을 퍼주는 넉넉한 인심이 엿보였다.

저자는 이 그림에 그려져 있는 세명 중 가운데 인물을 여자로 잘못 보고 있어요.
가운데 가르마를 탄 머리와 연한 푸른색 치맛자락때문에 여자라고 생각한 듯한데, 곰방대를 물고 있는 입가는 사내에 가깝고, 푸른색 옷자락은 치맛자락이 아니라 등에 메고 있는 괴나리봇짐입니다. 자세히 보면 봇짐 끈이 팔 밑으로 지나가는게 보여요. 봇짐 위에는 모자(?)가 여러개 매달려 있구요. 가르마를 탄 댕기머리는 관례를 미처 치루지 않은 젊은이로 설명할 수 있겠죠.

저자는 이 사람을 여자라고 잘못 봤기 때문에 누가 봐도 왼쪽의 주모에게 앵겨붙어있는 아이를 가운데 '여자'의 자식으로 생각했고, 양껏 먹은 뒤 돈을 지불하려고 주머니를 벌리고 있는 것을 아이를 달래려고 주머니를 벌리고 있는 걸로 설명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배불리 먹어서 툭 튀어나온 배를 가지고 '젓가슴을 드러낸 여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위치를 보나 모양을 보나 저게 가슴입니까, 배꼽이지; 그렇게 여인으로 굳게 믿은 나머지 결국 남자 손님 두 사람을 부부지간으로 만들어버리는 등, 여러가지 독화오류를 범하고 있지요;;;

한창 잘 읽어나가다가 저자가 그림을 잘못 읽은 이 부분부터는 책 내용과 거리를 두게 되더군요.
비유하자면 배우의 유리가면이 깨진 느낌이랄까. 그림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특히나 바람의 화원같이 그림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팩션소설이라면 저자는 독자에게 '자기는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해요. 그래야 독자는 그림이 펼쳐놓는 픽션에 실감나게 몰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미 그 믿음이 깨진 셈이 되었으니 그때부터 내용을 사감없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더군요.

한번 그렇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니까 저자가 끝까지 펼쳐놓는 단원, 혜원의 그림 독화가 종종 꿈보다 해몽같게도 들리더라고요. 김홍도의 '씨름'과 신윤복의 '쌍검대무' 그림대결에선 특히 그런 느낌이 강했죠. 검을 들고 춤추는 여자 두명의 옷자락이 날리는 방향을 살펴보면서 어느쪽이 이겼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그렇고, '씨름'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바뀐 옥의 티를 지적받자 노을빛을 이용해서 그림의 평가를 다시 뒤집는 부분도 그래요.

그리고 김홍도가 신윤복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설정도 그닥 편치많은 않게 다가왔어요. 단원이 낫냐, 혜원이 낫냐. 서로 다른 그 강렬한 개성으로 소설에서도 무승부로 끝난만큼 두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자가 묘사하는 단원과 혜원의 모습을 보면 단원을 혜원보다 아래로 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왜, 본문에서도 나오죠? 단원이 천재라면 혜원은 귀신이다. 라고요. 그림대결이 벌어질때마다 김홍도는 신윤복의 그림에 경탄하면서도 패배심을 느끼는 장면이 거듭 나오는 반면 신윤복은 스승의 그림을 보며 감탄할 지언정 열등감을 한번도 느끼지 않아요.

글이 주로 김홍도의 시점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신윤복이 자신과 대결하려는 김홍도를 만류하면서 '스승님은 색맹이다.' 하고 그동안 숨겨왔던 핸디캡을 폭로하는건 허허.. 충격과 공포였지요. 그때문에 김홍도는 자신의 그림에 붉은 색이나 녹색을 쓸 일이 있으면 신윤복의 손을 빌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엄연히 김홍도의 그림에도 붉은 색과 녹색이 있는데 그것이 별로 쓰이지 않았다고 해서 화가를 색맹으로 만들고, 그 쓰인 색은 다른 사람 손을 빌린거라고 해석하는건... 상상이 좀 지나치단 생각이 들어요. 그 추측대로라면 긍재 김득신도 색맹이게요? 그 시대 화풍이 '컬러풀'했고 김홍도만 연한 갈색을 주로 썼다면 또 몰라도 그리 탄탄하지 않은 근거로 특정화가의 그림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점이 불편했어요.

내가 이 정도의 픽션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고지식한건지, 아니면 이미 책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나만 받아들일 수 없게 된건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좀 심란하네요. 제가 그림과 가까운 사람이어서 저자- 그림을 보는 입장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입장으로서 책을 읽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네요.

그 점의 연장선하에서 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은, 5개의 초상화에 각각 그려진 눈, 코, 입, 얼굴 등을 다시 모아서 사도세자의 초상을 만들어내는 부분이에요. 그 부분을 각각 따와서 한데 모아 그린다고 해서 닮은 얼굴이 나오는게 아니거든요. 얼굴 안에 이목구비가 위치하는 비례, 코와 입 사이의 길이, 입과 턱사이의 길이 등등.. 위치와 비례가 조금만 달라져도 인상이 확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얼굴일진대, 이목구비를 모아놓기만 하면 사도세자의 초상화가 나온다는 발상은 초상화를 한번도 그려보지 않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아서 좀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그 외에도 딸리는 문장과 끊기는 문맥을 반복된 미사여구와 상상력으로 덮는 듯한 느낌이 없지않아있는데, 그것은 포스팅 내용 밖이니 논외로 치고- 여튼 뭐 그렇다는 겁니다. 소재가 흥미로워서 사보기는 했지만 도서관에서 미리 읽었다면 부러 소장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p.s) 이 책이 드라마화가 결정되었고, 신윤복 역에는 문근영양이 캐스팅되었다는데 개인적으론.. 뭐 그닥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신윤복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설정인 <미인도>와의 싱크로는 어떻게 하려고?)
내용은 드라마에 잘 맞을 것 같아서 기대돼요. 여심을 건드리는 부분도 있고요^^ 물론 각색이 필요하겠지만...

by 아테 | 2008/02/26 16:49 | ●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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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코미야 at 2008/03/02 14:53
재밌나 보군요. 드라마화 소식을 듣고 가격 오르기 전에 책을 사 둘까 말까 하다가 지금까지 보류하고 있었거든요. 음, 나중에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읽어보고 구입 여부를 판단해야겠습니다. 포스팅 잘 봤습니다. 이런 내용이었군요. ^^
Commented by 아테 at 2008/03/04 11:12
초코미야님/ 네, 드라마화되면 저도 볼 것 같아요. 그런데 대본이랑 연출이 엄청 중요할 것 같더라고요. 글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얼마나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인지라..(아시다시피 저는 소설도 받아들이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포스트가 너무 스포덩어리라서 초코미야님께서 책을 읽는 재미가 살짝 떨어질까봐 걱정이 드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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