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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와 헤파이션



미국 현지에서 그리 호평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별 기대도 안하고 봤다가 생각지도 못한 직격탄을 맞곤 그 여운이 한참이나 가서 고생했습니다. 결국 DVD를 질러버렸죠.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오히려 미국보단 우리나라에서 더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에 막상 보고 나서 만족도가 올라간 것도 있고 특히 여자분들이 블로그에서 알렉산더를 종종 언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스포를 피하느라 내용을 보지 않았지만 무엇때문인가- 했더니 과연... 납득이 가더랍니다.

당시엔 아직 <왕의 남자>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는데 지금 다시 한번 보니 이 얘기야말로 기원전판 <왕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광대라던가 그런게 아니라 단어 그대로의 의미인 '왕의 남자' 말입니다.
영웅의 서사시에는 전설, 신화, 창작을 불문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로맨스가 꼭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는 헬레네를 사랑하여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으며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스는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사랑했고 LOTR의 아라곤은 아르웬과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을 했구요. 그런데 영웅의 일대기라고 할 만한 이 영화에는 여인과의 로맨스가 절대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평생의 친구였던 헤파이션과의 교감이 메웁니다.

그런데 이 둘의 사이가 어찌나 절절하고 슬프던지 웬만한 남녀 로맨스는 저리가라 할 정돕니다ㅜㅜ
<알렉산더>는 저에게 로맨스영화의 이미지로도 남아있어요 덜덜




알렉산더를 이해해준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션.
영웅 아킬레스를 숭배했던 알렉산더는 영화 내내 자신을 아킬레스로, 헤파이션을 아킬레스의 연인이었던 페트로클루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아킬레스와 페트로클루스의 무덤에 찾아가서 나란히 헌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죠.
그만큼 그 둘의 사이는 영혼마저 굳건히 결합되어 있어서 절대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어요. 알렉산더가 총애했던 시종 바고아스나 알렉산더의 왕비였던 록산느도 헤파이션의 자리만은 침범할 수가 없었지요.



알렉산더가 자기를 유혹하는 바고아스와 록산느에게 관심을 보여도 헤파이션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 내색하지 않는데, 그건 질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알렉산더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헤파이션의 진실된 그 마음만큼이나 알렉산더도 그에게 충실합니다. 바고아스와 함께 몸을 섞기도 하고 공공연히 키스도 하지만 헤파이션이 침실로 들어오면 서슴없이 바고아스를 내보낼 정도예요.



침실로 들어가는 헤파이션의 저 자태좀 봐요.
저~~ 한구석에 있는 바고아스 쯤은 가볍게 버로우시켜버립니다.

바로 이렇게요.


바고아스와는 육체적으로 사랑하지만 헤파이션과는 정신적인 사랑을 한달까요. 고대 그리스에서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던 동성애의 의미에 매우 가까운 사랑입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헤파이션과 함께 잤느냐 안잤느냐 하는 것은 관객의 상상에 맡길 뿐,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베드씬을 보여주면 둘의 순수한 사랑이 퇴색될 거라고 감독과 배우 두명이서 합의 봤다고 하는군요. 저도 그에 동의합니다.



오늘 밤, 나와 함께 있어달라는 알렉산더의 대사 때문에 분명 관계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후에 둘이 발코니에서 나누는 대화가 참 가슴을 울려요. 차라리 이런게 더 둘의 사랑이 느껴진다니까요.



"내가 믿는 건 세상에서 너 뿐이야.
늘 내 곁에서... 날 도와줘, 헤파이션.
너밖에 없어. 아무도 없어"




"...그 고결한 모습 속에 감춰진 야망.
온 세상을 품는 눈빛...
폐하 앞에 서면 전 늘 작아져요.
저도 폐하 뿐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헌신적인 사랑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헤파이션에게 알렉산더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고
알렉산더에게 헤파이션은 자신의 반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알렉산더의 눈을 바라보는 헤파이션의 눈빛은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헤파이션에게 홀릭한 이유중의 하나가 그 빨려드는 보석같은 눈동자 때문이었어요. 올리버 스톤 감독님도 자레드 레토의 눈빛이 인상적인지 DVD 코멘터리에서 이 장면을 두고 눈빛이 굉장하다고 경탄해 마지않더군요.



콜린 파렐도 자레드의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자기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하더라구요. 마음껏 흔들려도 됩니다. 저 눈을 보면 얼마든지 이해가니까. 으하하하!!!




그리고 이것은 굉장히 유명한 일화인데, 영화에서도 그대로 묘사했더군요.
영화를 보면서도 헉- 했던 장면인데 당대의 기록에도 남겨진 사실이라니.. 허허 할말이 없지요;;

알렉산더가 바빌론에 입성하자 다리우스왕의 딸 스타테이라 공주는 알렉산더 앞으로 나아가 구명을 요청합니다.
원래는 다리우스의 왕비지만 여기선 공주로 각색한 듯.

그런데 그녀는 알렉산더 옆에 서 있는 헤파이션을 알렉산더로 착각하고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한참동안 블라블라 청원을 하는겁니다. (캡쳐사진만 봐도 공주는 자기 혼자 딴데 향하고 있고 헤파이션은 난감해하고..^^;;)



놀란 신하가 스타테이라 공주에게 귓속말을 하자 본의아니게 저지른 무례에 그녀도 매우 당황하는데-

알렉산더가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괜찮습니다, 공주. 그 사람이 곧 나니까."


헤파이션과 알렉산더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는지는 이 말로 다 설명되지 않나요.ㅜㅜ
충분히 자신의 권위가 실추될 만한 상황이었는데도 기분나빠하기는 커녕 그가 곧 나라고 흐뭇하게 답하다니요.
자신과 헤파이션을 헷갈렸다는 걸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둘은 하나였으니까요.

이처럼 바고아스도 물리치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도 과시했던 둘의 친밀한 관계가 중반쯤 접어들어 위기를 맞이했으니, 바로 알렉산더의 부인 록산느의 등장.
이때까지도 알렉산더는 왕비를 맞지 않았고 따라서 후계자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올림피아도 그걸 걱정해서 헤파이션을 좀 멀리해보는게 어떠겠냐고 잔소리까지 하죠;; 어머니의 그 말에 "나를 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은 헤파이션 뿐이에요!" 하고 반항한 아들네미는 10년 만에야 혼인합니다. 근성 한번 대단하죠;



정복지의 바르바로이들과의 동맹을 맺는 주연자리에서 한 여자가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
록산느라는 그 여자는 춤을 추며 알렉산더를 유혹하고 알렉산더도 어머니를 닮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죠.
이미 눈치챈 부하들은 키득거리고 있습니다. 헤파이션만 심란한 표정으로 두명을 바라보고 있는데 클레이투스가 툭 건드리면서 헤파이션을 슬슬 자극하는 겁니다. 니 남편 바람났다 낄낄 이런식으로요; 아놔 표정 지대롤세.



약이 오른 헤파이션은 클레이투스를 확 밀치고,
클레이투스는 안그래도 니가 예전부터 꼴보기 싫었는데 잘됐구나 하고 막 덤벼들어 옥신각신하다가 갑자기 헤파이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립니다! (어디다 감히!)
이렇게 왕비 록산느의 등장을 계기로 헤파이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료장수들의 입장과 알렉산더의 결혼을 통한 다민족 융화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혼례식은 성대히 치러지지만 헤파이션은 그 자리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날 밤 헤파이션은 그의 침실에 몰래 숨어듭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알렉산더가 못내 안쓰러운 건지...
축복받지 못한 결혼을 하는 알렉산더를 위로해주고 싶은건지...
혹은 이제 더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된 알렉산더를 떠나보내는 것이 슬픈걸까요.
반지를 꺼내들어 알렉산더의 손가락에 끼워주는 헤파이션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습니다.



아아 저 촉촉한 눈빛...ㅠㅠ 젖어드는 눈동자라든가 그 흔들림이라던가 깜박임마저 눈을 떼지 못하겠어요. 백마디 말을 하는 것처럼 감정이 묻어나오는데 캡쳐로는 그것의 백분의 일도 표현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합니다 에잇!



"이집트에서 샀어요.
태양과 달을 숭배하던 시절에 만든 거라더군요.
폐하는 제게... 태양입니다."




말하다 말고 감정이 북받친 헤파이션은 알렉산더를 와락 껴안습니다.



"아들도 낳으시고...
위대하신 폐하."


아들도 낳으시라고 말하는게 왜 저렇게 안타깝게 들리는겁니까ㅜㅜ



그러나 자신의 초야가 치러질 신방에서 둘이 포옹하는 모습을 목격한 록산느는 헤파이션에게 격렬한 질투심을 품게 됩니다. 심지어 알렉산더의 손에 끼워진 헤파이션의 반지를 억지로 빼내어 던져버리기까지 하죠!


화들짝 떨어지는 둘의 표정이 영락없이 밀애의 현장을 들킨..;

그럼에도 알렉산더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헤파이션의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낍니다.(ㅜㅜb)
그는 평생 그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않습니다.

알렉산더가 혼인한 이 날부터 헤파이션은 한발짝 물러나 한동안 전면에 나오는 일 없이 뒤에서 알렉산더를 지켜봅니다. 그렇게 헌신적이면서도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그의 모습이 못내 안타깝더라구요.
그저 알렉산더의 손에 항상 끼어있는 반지와 헤파이션의 눈빛만이 둘의 변함없는 유대를 확인시켜줄 뿐이죠.



결국 알렉산더는 광기에 휩싸여서 자신에게 직언하던 선왕의 충신 클레이투스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극심한 혼란에 빠집니다. 알렉산더의 내면이 허물어지려는 위기의 순간에 헤파이션이 다시 전면으로 나섰습니다.

내 남편을 좀 봐야겠다고 억지로 들어오려 하는 록산느를 단호하게 가로막는 헤파이션.
그동안 아무내색 없이 록산느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헤파이션이 처음으로 강하게 그녀와 부딪치는 장면이에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에겐 내가 필요해요!"

"아니오. 필요없소."

"그대는 필요하고?"



기승스럽게 질투하는 록산느의 말에 헤파이션은 피식- 웃습니다. (이때 정말 희열이.. 그동안 잘 참았어ㅜㅜ)
막사 한구석에 처박혀 한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던 알렉산더는 헤파이션의 말에 구원됩니다.



"영웅은 결코 자신이 한 일을 뒤돌아보지 않는 법입니다.
당신은 군주예요! 회한은 장애물일 뿐이지요."




"내가 그토록 오만했던가?"

"군주의 꿈이... 때론 오만으로 보이기도 하죠."

"클레이투스 말대로 난 독재자가 되었어..."

"모두들 이해할 겁니다.
폐하는 저들에게 자랑스러운 왕이니까요."




영화를 보며 내내 느꼈던 것이지만, 마더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신화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던 알렉산더의 불안정한 내면을 균형있게 지탱해주는 사람이 헤파이션이었어요.

이 영화에선 떼샷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 무리 속에서도 헤파이션은 항상 알렉산더에게서 눈을 떼지 않더라구요.
때론 다정한 눈빛으로, 때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흔들리는 알렉산더를 가슴 졸이며 바라보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 사이에 적대심이 점점 퍼져나가는 모습을 근심스럽게 직시하고, 자신과 함께 바라보았던 알렉산더의 꿈이 좌절되는 모습까지 다 지켜보죠.
세상 모두가 이해해주지 않는 고독한 영웅을 홀로 감싸주는 헤파이션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요.
그래서 둘은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내내 슬퍼보여요.

전장에서도 헤파이션은 알렉산더를 떠나지 않으며 종종 그를 구해주기도 합니다.
왕자였던 알렉산더가 둘째 외조부 측의 사람들과 말싸움이 붙자 곁에서 그를 말리다가도 외조부가 알렉산더에게 잔을 던지니까 그만 울컥해서 제일 먼저 달려들어서 날뛰더니만 그걸 시작으로 해서 전쟁터에는 그 누구도 그이를 해치려는 자는 절대 용서못할껴! 태세로 임전하지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두 사람의 공격을 받는 알렉산더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말 위에서 그대로 낙하공격하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원정에 군사들이 반발한 나머지 소요가 일어나자 몸빵으로 알레산더를 보호하기도 했구요; 외모는 청순한데 이럴땐 또 터프해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헤파이션의 얼굴에도 흉터가 하나 둘 씩 늘어나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청순한 미모란...ㅜㅜ



사실 가슴벌크도 그렇고 팔뚝 굵기도 그렇고 헤파이션이 더 우람하거든요;
그런데도 둘이 같이 있으면 영락없이 부부예요 크흑.



이 영화의 마지막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인도 오지의 코끼리 부대와 맞붙습니다.
거대한 코끼리들이 반지의 제왕의 무막을 연상케 하는 공격력으로 시종일관 알렉산더의 군사들을 압박하는 가운데, 한마리의 코끼리와 정면으로 대결한 알렉산더는 그만 낙마하고 맙니다.



그걸 본 헤파이션이 놀란 나머지 옆에서 돌진해오는 코끼리도 보지 못하고 황급히 달려오다가 코끼리가 휘두른 육중한 코에 머리를 맞고 나가 떨어지는 겁니다. 보다말고 어떡해! 소리가 튀어나오더라구요.

반쯤 의식을 잃은 알렉산더의 핏빛 시야에는 애마 부셰팔로스의 죽어가는 모습이, 헤파이션의 피투성이인 모습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화면의 색감이 굉장히 멋져요.



알렉산더는 드디어 원정의 끝을 선언했으며, 수많은 싸움을 거친 원정 못지 않게 험난한 귀향길이 시작되지요.
모두 세 갈래의 길로 나뉘어 바빌론으로 향하는데, 알렉산더의 군대는 지름길인 게드로시아 사막을 횡단해야 했습니다. 그 이글대는 열기속에서 헤파이션이 잠깐 보입니다.



이전처럼 말을 타는 모습도 아니고 가마에 몸을 눕힌채 흔들리며 실려가고 있더라구요.ㅠㅠ 아마 그 전투 이후 부상입은 몸을 추스리지 못한 듯 싶어요. 저렇게 쇠약한 몸으로 사막을 건너게 하다니!!!ㅜㅜ


바빌론에 돌아온 헤파이션은 중병에 걸립니다.
죽어가는 헤파이션의 눈동자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맑고 투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색을 잃고 흐릿해져 있더라구요. 그의 몸에서 생명이 꺼져간다는걸 그런 식으로 보여줄 줄은 몰랐어요.
막상 캡쳐를 보니 별로 안그래보이는데;; 영상으로 보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예감이 안 좋아. 난 죽을거야."

"너만은 내게 정직했지.
넌 내 버팀목이었어.
날 떠나지마, 헤파이션."




"나의 알렉산더...
흠모하시던 아킬레스보다 더 큰 영웅이 되었어..."


"넌 페트로클루스고?
그럼 죽는 거잖아!
그건 유치한 신화일 뿐이야!"




"하지만... 아름다운 신화지."

"헤파이션!"

"혼자 두기 싫어..."
이 말 정말 울컥....
알렉산더도 미칠 노릇이지만 저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헤파이션의 마음은 오죽했을꼬ㅜㅜ


"난 너 없인 안돼!
살아야 돼 헤파이션!"


알렉산더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억지로 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헤파이션과 함께 이뤄나갈 자신의 창창한 꿈을 정신없이 늘어놓기 시작하고, 헤파이션은 아무말 없이 귀를 기울입니다.
우린 함께 늙어죽을 거야- 그가 이야기를 끝내고 뒤돌아봤을 때, 이미 헤파이션의 몸은 굳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듣다 자신도 모르는 새 숨이 멎은 걸까요.
헤파이션의 눈은 살아있는 것처럼 똑바로 떠져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비통한 절규가 울려퍼집니다.
나와 함께 죽어야지! 그게 우리 운명이잖아! 왕의 심정은 자신이 외친 말 딱 그대로였을 겁니다.

비탄에 빠진 나머지 이성을 잃은 알렉산더는 록산느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다들 그를 미워했지만 독살할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야!
넌 내 모든 것을 빼앗았어-!!"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헤파이션의 시체 옆에서 며칠을 떠나지 않고 울부짖었다고 하지요. 그의 장례도 굉장히 호화롭고 성대하게 왕실장으로 치렀다고 합니다.

그때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그의 죽은 몸을 슬퍼하지 말고 내 살아있는 몸을 슬퍼하게. 나는 내 모든 것을 잃었으니.."

그 이후 알렉산더는 마치 텅 빈 껍데기처럼 술독에 빠져 살다가 8개월 만에 열병에 걸려 쓰러집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는 헤파이션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어 간절히 허공에 뻗습니다.
마치 헤파이션이 있는 곳으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하는 것처럼...



왕의 팔은 툭 떨구어지고 반지는 떨어져 굴러갑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알렉산더의 인생을 이 말로 끝맺었습니다.

"뜨거운 영웅의 심장은 마침내 멈췄다.
그는 헤파이션과의 약속을 지켰던 것일까?"


이 나레이션 또한 제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이렇게 솔직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네요.

알렉산더가 자신과 헤파이션을 아킬레스와 페트로클루스로 비유했을 때부터,
둘의 마지막은 이미 예견되었던건지도 몰라요.



"너무 큰 야심은 버리세요.
페하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걱정 마. 우린 늘 함께 할 거야.
죽을 때까지..."





운명을 건 가우가멜라 전투 전날 밤에도 알렉산더는 헤파이션에게 말합니다.

"네가 죽으면..
내 목숨도 왕위도 버리고 복수할거야.
저승길도 함께 가야지."


아킬레스가 페트로클루스의 복수를 하고 자신을 죽음의 길로 내몬 것처럼,
자신도 헤파이션이 죽으면 그 뒤를 따르겠다고..

영화에서는 이렇게 거듭 언약했고, 둘의 마지막도 그대로 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다루는 방식도 좋았는데요,
대가 센 록산느는 그 성격대로 격렬한 질투심을 표출하지만 오히려 질투할 법한 남첩 바고아스는 처음부터 자신이 헤파이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순응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는 요염하게 춤을 추며 알렉산더를 즐겁게 해주고 키스를 나누고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그 뿐입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수동적인 태도가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어요^^;;

특히 무너지는 알렉산더에게 "당신은 군주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왕이다." 라고 말하면서 일으켜세우는 헤파이션을 바라보는 바고아스의 눈빛은 뭐랄까요.. 연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부러움 내지는 경탄하는 시선이었어요. 늘 무표정인 사람이긴 하지만(;) 그 장면에선 바고아스의 마음이 읽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클레이투스를 비롯한 장수들의 눈길은 곱지 않았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헤파이션은 그들에겐 왕의 비위나 맞춰주는 아첨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심지어 클레이투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난 간신들처럼 굽신대지 않아, 헤파이션!"
그런데 이 사람이 왕자 알렉산더에게 "사랑해. 왕자님" 하고 대쉬했던 장본인. 이 사람도 질투하는거였어.-_-




-- 알렉산더가 죽기 전에 조각상을 바라보는데..
이거 아무래도 헤파이션의 조각상 같지 않나요?
머리모양이 헤파이션이 초기에 했던 헤어스타일이고 코끝이랑 입매도 비슷해요.





-- 아무튼 재작년에 본 이 영화때문에 자레드 레토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동안 그의 출연작들도 꽤 찾아봤는데 그 얘기는 자레드 본인에 대한 잡설과 함께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흐뭇한 사진들을 몇장 붙여봅니다.


알렉산더 시사회때 콜린 파렐과.


영화때문인지 아직도 연인같은 분위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요. 자레드 정말 다소곳..ㅜㅜ
그러나 이래뵈도 자레드가 형님이십니다. 71년생으로 콜린보다 4살 위예요.


어떤 마나님이 울 자레드 정말 예뻐서 죽으려고 하십니다;



영화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인 모양인데 파란 눈에 적목현상이 맺혀서 무섭게 나왔네요;


옆은 바고아스역의 프란시스코 보쉬. 원래 무용을 하던 사람이었대요.
개인적으론 영화속의 모습보단 이 모습이 더 예뻐보이네요.



p.s) DVD 화면을 제대로 캡쳐하려니까 정말 힘들더라구요.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고 원하는 부분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DVD는 자막까지 꼬박꼬박 캡쳐되기 때문에 자막 안나오게 설정하고 캡쳐하고 대사 확인하고 다시 안나오게 캡쳐하고...avi파일을 캡쳐할땐 정말 척척이었는데 이건 캡쳐만 하루종일 했어요.ㅠㅠ
그래도 원본 소스가 좋은 덕분에 리사이즈하고 보정해도 선명도가 죽지않고 괜찮은 수준으로 나온 것 같네요^^

다만, TV로 보는 색감과 컴퓨터로 보는 색감은 정말 차이나더군요. 알렉산더의 화면은 콘크라스트가 강한 편인데 그걸 TV로 보면 진짜 눈부셔요. 작열하는 태양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하얗게 날라가는거 전혀 없구요. 그런데 캡쳐하기 위해서 컴퓨터로 실행시켜보니 아니 왜 이렇게 희끄무레하고 어두침침하답니까.
혹시 DVD 타이틀을 보기 위해서 컴퓨터에 DVD롬을 달아놓고 그걸로만 감상하는 분이 계시면 당장 플레이어를 구매하시길 권합니다. 컴퓨터로 보는 건 정말 DVD의 반에 반도 못느끼는거예요;



by 아테 | 2007/02/23 16:27 | ●영화 | 트랙백 | 핑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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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망상의 빛과 그림자 : 알렉산.. at 2008/12/12 03:16

... 더와 헤파이션과의 씬을 집중해서 봐서(;) 파이널 컷을 볼때도 뚜렷하게 차이점을 느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많이 나올지도 모르니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예전에 올린 알렉산더와 헤파이션을 먼저 보시는 것이 더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실 수 있습니다. 1. 전투에서 이긴 후 바빌론에 입성하는 장면에서 상당히 많은 씬이 추가되었습니다. 왜 그러는지 몰 ... more

Commented by funnybunny at 2007/02/23 16:37
아테님 감상 보고 있으려니; 알렉산더를 봐야할 것 같은 - 기분이 마구마구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욕구를 자극해주는 감상문이 좋아요 +_+

그런데 제가 딱 마지막 문단의 그 사람입니다. 하하. 정말 크게 보고 싶은건 친구 집으로 들고 뛰어가기 때문에 (홈시어터) 차이가 새삼 느껴져요; 그래서 알고 있긴 한데 .. 그래도 집에서는 느긋하게 감상할 사정이 잘 안되니 바로 손쉽게 볼 수 있는 컴으로 이 생활을 * 년째 해오고 있답니다. 그래도 언젠가;;
Commented by june at 2007/02/23 18:51
왠만한 동양사극보다 더 표현이 은은한 작품이네요.T0T)-b
비디오도 dvd도 없지만 질러야겠습니다. 완소 포스트, 감사해요.>_<~!!!
Commented by 케로빙 at 2007/02/23 20:35
알렉산더....무진장 큰 영화관에서 10명 앉아서 봤드랬습니다. 러닝타임이 꽤 길었지만 정말 감동적으로 봤거든요. 어쩌면 영화관에 사람이 없어서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DVD플레이어로 보다가 어제 급해서 컴퓨터로 좀 봤더니 도저히 못 보겠더군요. 영상은 확실히 크고 선명한 화면으로 봐야합니다 정말!!!
Commented by rin at 2007/02/23 23:01
멋진영화죠....
개봉했을때 영화관가서 봤습니다, 그것도 심야상영...(도데체 뭔생각으로) 혼자 감동하면서 보고는 거의 마지막장면서 글자그대로 절규-"왜 저 반지가 저깄어!!!! 알렉산더랑 같이 묻어줬어야 하는거 아냐~~~!" 하고 울부짖다가 친구한테 맞아죽을뻔 했다죠.(영화보신분이면 제가 왜 분개했는지 아실듯--;)
그뒤 티비에서도 두어번봤지만 역시 영화관에서의 감격은 되살아나지 않더군요.

설은 잘지내셨는지요? 전 어김없이 '명절이면 살빠지는 징크스' 를 지키고말았지요...(종갓집 둘째딸-_-;)
Commented by 아테 at 2007/02/23 23:31
hunnybunny님/ 취향이 맞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마구 권해주고 싶은 영화예요^^ 보시면 후회 안하실 겁니다. 이런 영화가 박한 평가를 받는다는게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보물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으하하; 그러셨군요^^;; 그래도 홈시어터로 감상할 수 있는 친구 집이 있다는 것도 부럽네요. 언젠가는 꼭 hunnybunny님 댁에서도 TV로 언제든지 편히 볼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june님/ 표현이 은은한 작품이라는 june님의 말씀에 제가 다 뿌듯해졌어요. 제가 포스트를 잘못쓴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알렉산더 DVD는 한정판으로밖에 나온게 없는데 제작사에서 더이상 출시안하는 것 같고 대부분의 쇼핑몰에서도 품절이니까 더 물량 떨어지기 전에 빨리 지르시는게 좋으실 것 같아요. 저도 겨우 구했거든요.
Commented by 아테 at 2007/02/24 00:56
케로빙님/ 이걸 왜 전쟁영화처럼 홍보했는지 모르겠어요. 알렉산더란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였는데.. 그래서 기대하지 못한 감동을 잔뜩 안고 돌아왔답니다. 케로빙님은 축복받은 환경에서 보셨군요.. 부럽습니다ㅜㅜ 마치 개인영화관에서 보신 기분이셨겠어요^^
저도 컴퓨터로 못보겠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화면이 저렇게 변할 수 있지! 하고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알렉산더가 워낙 영상이 멋지니까 화면의 채도, 대비, 색감이 뇌리에 콱 박혀버려서 그걸 더 느낀 것 같아요.


rin님/ 으아아악 맞아요!! 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외쳤습니다!! 대체 그 반지를 왜 톨레미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냐구요! 당연히 알렉산더와 묻어줘야 하는건데!!!! 으아 공감 백배....ㅜㅜ 그것때문에 괜히 톨레미 할아버지가 미워보일 정도였어요! 이거 매장하기전에 자기가 혼자 들고 튄거 아니에요?
화면도 정말 웅장하지 않나요. 가우가멜라 전투 크흑...ㅜㅜb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은 장중한 내용을 십분 살려주는 영상미였던 것 같아요. 정말 제 완소영화중의 하나입니다ㅠㅠ
종가집 둘째딸이시라니...(같이 손잡고 웁니다.) 1킬로 늘어서 살찌는구나 했는데 연휴 막바지에 단숨에 2킬로 빠졌습니다;
Commented by 시스 at 2007/02/24 20:37
헉... 콜린 파렐이 금발머리 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 코미디로 판단하고 안봤던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전에도 쓴 것 같지만 아테님 글을 읽고 있으면 꼭 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그건 그렇고...
알레르기는 나으셨나요???
Commented by 아테 at 2007/02/25 14:45
시스님/ 처음 봤을땐 금발이 좀 어색해보였지만 보다보면 갈수록 싱크로되어서 그건 눈에 안들어오더라구요. 제 글이 아무래도 뽐뿌질의 오라를 풍기는가봅니다; 칭찬의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아하하;;;
예, 다 나은 듯 싶어요. 어제 시험삼아 고등어랑 돼지고기 먹었는데 아무 문제 없더라구요!^^
Commented by 타마키 at 2007/02/26 19:07
에헷...오랜만이어요.^^(저번에 실수로 닉 잘못 쓴 일은 잊어 주십...어흠;다른데서 쓰던 닉인데 써놓고도 전혀 몰랐다는...;;;;)
알렉산더...학교 도서관에서 DVD로 분명 본 건데 리뷰로 보니 또 색다르네요.
저도 보면서 '이건 대놓고 분위기가 좀....아니, 내가 그쪽 스토리를 많이 봐서 그렇게 보이는건가' 하고 잠시 자신의 정체성을 탓하며 잠시 민망했는데 그렇건만도 아닌가 봅니다.^^;사실 제일 많이 기억나는건 콜린파렐의 팔자눈썹과 졸리씨...;;;;
콜린파렐이란 배우 얼굴이 전혀 제 취향이 아니고 제 머릿속 알렉산더는 어쩐지 아우구스투스 조각상같은 금발 미청년이었던 지라 보는 내내 그게 불만이었던 기억이예요.^^;
그래도 아렇게 또 보니 또 괜찮구만요. 아테님의 리뷰는 정말이지 볼때마다 본래가진 매력을 몇십프로는 더 끌어내 주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아테 at 2007/02/26 21:08
타마키님/ 아아.. 닉을 바꾸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오랫만입니다^^ 개강준비 잘하고 계시죠?
이건 대놓은거 맞아요^^;; 미국 시사회때도 "이거 동성애 영화냐?" 하는 반응도 있었대요. 헤파이션과의 관계는 워낙 유명하니까 알렉산더를 다루려면 도저히 안짚고 넘어갈 수 없었을거예요. 이 영화는 아예 확실히 짚고 넘어갔지요;
콜린 파렐의 팔자눈썹.. 으하하하!! 저도 처음 봤을땐 자꾸 그 팔자눈썹만 보이더라구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이 아니라(;) 콜린 파렐의 눈썹이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더라면...을 되뇌여야 했어요; 그런데 두번째부터는 익숙해졌는지 그냥 알렉산더로 보이더라구요.
안젤리나 졸리는 스모키 메이크업도 강했지만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조차 섹시하게 읽는 그 입술(;)에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그래도 멋졌어요. 올림피아 역에 잘 어울린 것 같아요.
제가 느낀 감동을 살려 멋지게 써보고 싶었건만 둘의 관계가 영화 전면에 좌악 걸쳐져 있다보니 그 광범위함을 통제할 수가 없어서;; 감상보다는 줄거리요약으로 흘러간 감이 없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아테 at 2007/02/26 21:28
타마키님/ 으헉; 죄송합니다.ㅜㅜ 뒷페이지에도 댓글 하나 달아주셨는데 제가 거기에 답글 달다가 잘못 눌러서 타마키님 댓글을 삭제했어요OTL 이런 실수만 도대체 몇번째인지..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타마키님도 알레르기 체질일 수도 있겠네요. 먹을거 조심하셔서 나쁠건 없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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