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8일
무지개를 이은 왕비

당초 국내에서 불리던 제목은 '무지개를 건너는 왕비'였지만 방송된 오프닝을 보니 한글로 '무지개를 이은 왕비'라고 나와주더군요. 건너는, 이은.. 어떻게 번역하냐에 따라 제목에 내포된 뜻이 많이 달라지네요.
예전에 중국의 마지막 황실을 소재로 한 '유전의 왕비 마지막 황제'를 만든 아사히보다 우익적인 성향이 있다고들 하는 후지TV에서 만드는 조선 마지막 황실 드라마여서 촬영할때부터 꽤나 시끄러웠죠.
막상 방송된 걸 보니 꽤 친한국적인 드라마?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언급되고, 안중근 의사가 약지를 잘라 맹세하고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항일 투쟁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하고 친절히 설명해주더군요.



그리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도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누군가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되고 있다는 말에 영친왕이 분노하면서 뛰쳐나가려고 하는데 충복이 그 앞을 가로막고 위험하다고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도리없이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장면 때문에 일본 시청자들이 꽤나 충격을 받았다고 하네요. 교과서에도 안실린-_- 사건이니 우리 조상들이 정말 저런 일을 저질렀느냐고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고, 오죽하면 한국인 입장에서 만든게 아니냐 하는 말들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저는 예상보단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봐요. 결혼 결정만 봐도 일본 황족을 태자비로 맞이하게 된 한국 황실의 걸끄러운 입장, 졸지에 딸을 다른나라로 시집보내게 된 나시모토가의 곤혹스러움... 어느 한쪽의 입장만 편드는 시각이 없어요. 다만 정말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젊을 때부터 그토록 사랑했느냐는 의문은 살포시 들지요.


하지만 그 부분은 픽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감상했습니다. 드라마 끝나고 자막도 나오더군요.
드라마 자체의 감상으로만 들어가면, 저 세번 정도 울었습니다=_= 내용은 잔잔하니- 그렇게 아주 재미있다고는 말 못하고, 작위적인 설정들도 보이지만 그게 또 사람 심금을 울려설랑.....ㅜㅜ

첫번째는요, 태어난지 7개월 된 몸으로 조선으로 건너온 이진황자가 숨을 거두자 이방자 여사가 통곡하는 장면.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왜 이 아이가 죽냐고...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칸노 미호인 만큼 막 쏟아내지도 않으면서도 서럽게 흐느끼더군요.
짧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조선 체류기간동안 애써 티를 내지 않던 그녀가 속내를 드러낸 장면이라고나 할까요? 하늘에게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그랬냐는 어미로서의 울음인 동시에, 아이를 죽이려거든 차라리 일본인인 나를 죽이지... 하고 비통해해는 일본인 황태자비로서의 설움이겠지요.


나레이션으로 '진님의 갑작스런 사망원인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진상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하며 이 부분을 그렇게 살짝 터치하고 넘어갑니다.
다만 전후 상황의 묘사를 통해서 7개월된 아기의 몸으로 오랜 여행을 견디지 못한 것/ 황실에 일본인의 피가 섞이는것을 막으려는 조선인에게 암살된것 이렇게 두가지의 가능성을 흘려놓았습니다.
두번째로는 앞에서 설명했지만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동포가 무고하게 학살되고 있는데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책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던 영친왕. 이 부분은 나라잃은 설움까지 왈칵 밀려와서 정말이지.....ㅜㅜ


세번째로는 자신의 저택에 점점 동포들이 발길이 뜸해지자 이젠 나도 잊혀져 가고 있는거라고 쓸쓸하게 자조하던 영친왕이 조선에서 숙명여학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다는말에 얼굴이 환해져서 반색하면서 뛰쳐나가는데요,
거기서 그만 조선 태자 시절 자신을 모시던 나인 이천희의 딸을 만난거예요.


아직 어린 자신을 일본에 보내면서 마마는 꼭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게 자신을 껴안아주던 나인의 딸을 마주하고,
조국으로 돌아오시라.. 하는 이천희와 숙명여학원학생들의 간절한 부탁- 고국의 염원을 듣습니다.
하지만 어디 돌아오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몸이겠습니까?


당당히 그들 앞에 설 수도 없는 몸이기에 영친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흐르는 눈물을 감추다가 결국 그 자리를 뛰쳐나갑니다. 그리고 또다시 자기 방에 틀어박혀 비통하게 흐느끼고.......ㅠㅠ


아놔 왜 이렇게 불쌍한거냐고ㅜㅜ 정말 영친왕을 불쌍하게 그렸어요.
그에 비해 이방자 여사는 강인하고 꿋꿋해보여요.
영친왕은 어릴때부터 어머니 품을 떠나 이국에서 생활한 만큼 자기 방어적이고 자조적인 면이 있지만
이방자는 "나는 조선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전하에게 시집가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시집온 만큼 한일 양국의 걸끄러운 문제가 자신에게 닥쳐올때마다 의연하게 버텨내요.


하긴 망국의 태자와, 침략국의 황녀인만큼 어쩔 수 없지만요. 당장 신세가 저런데 성격이 반대면 이상하지.
일견 평온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가도 자신의 처지를 절감한 영친왕이
"당신이 뭘 알아! 일본의 황녀인 당신이 날 어떻게 알아!! "
하고 터뜨리는 장면도 있었어요. 이때도 눈물 찔끔.
캐릭터로는 복합적인 영친왕이 더 매력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로 그쪽에 감정이입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눈물 흘린 장면을 중심으로 설명해서 그렇지-_- 많이 의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품은 아픔이 유달리 깊어서 그걸 드러낼 때가 인상적인 거지요.
영화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서 재일동포 박순신을 연기하기도 했던 오카다 준이치는 여기서 가끔 한국어를 구사하는데요, 어마마마, 아바마마 정도는 잘하는데 대사가 길어지면 좀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일본인 충복의 한국말은 더했구요. 이 부분도 좀 자막 맹글어주시지..^^;
그리고 초 중반까지는 이대팔 가르마를 타고 나오는데 그게 조금 압박. 오카다의 잘 생긴 이목구비를 다 깍아먹더라. 나중에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안경을 썼는데 그제서야 얼굴이 좀 살아나는 감이.



조선에 처음 건너와서 근현식을 치르는 이방자여사.
칸노 미호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움직일 때 거대한 대수머리가 굉장히 무거운 티가 나서 안습...


조선황실 부분은 MBC에서 협찬받았다고 하더니 과연 배경이나 복식, 소품 등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천년의 사랑 히카루겐지 같은 영화에서도 한복 두루마기가 참 어설프게 나왔었는데 외국 드라마에서 황실 복식을 제대로 내보내주니 이 점은 대견하더구요. 화면만 보면 우리나라 드라마같아요.


덕혜옹주입니다.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은 응접실.
그런데 이 부분을 찍은게 지난 여름, 태풍 에위니아가 한창 몰아치고 있을때였어요. 그래서 내부에서 근현식을 치르고 있는데 문 밖에서는 아주 비가 막 쏟아지고 있더군요.
일본 제작진도 연출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이 광경을 놓칠 수는 없었는지 처마밑으로 낙숫물이 마구 후두두둑 떨어지는 장면을 따로 찍어서 이진 사망 때 함께 편집해놨더라구요.

그리고 한국 촬영씬에선 눈에 익은 국내 연기자들이 간혹 보였습니다.


고종황제와 상궁의 얼굴도 눈에 익었지만 특히 놀란건 나인 이천희.
무려 불멸의 청향!! 전예서씨였어요. 와아.. 여기에 나오실 줄은.

나중에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본명 전익령으로 올라가더군요.
--끝나기 직전에 이방자 여사 말년의 모습이 잠깐 나왔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입을 열기전까진 칸노 미호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분장이라고 해도 배우의 얼굴이 간데 없더군요;

-- 논란이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드라마를 보고 나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판단은 그때 해도 늦지 않으며, 어떤 판단을 내리든 각자의 몫이지요.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보는 분도 있는 반면, 부부애가 중심이기 때문에 더 안좋게 보실 분도 있을 것 같고요.
화가 나서 아예 안보시는 것도 자유지만 그 경우엔 드라마에 대한 판단을 유보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by | 2006/11/28 13:21 | ●드라마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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